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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파우스트』중에서

최근에 알게된 파우스트의 명구절들이다. 당연히도 그리고 아쉽게도 내가 파우스트를 직접 읽고서 발견해 낸 것은 아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으니까 나는 그분들이 떠주는 거 먹기만 한다. 먹기라도 잘하면 된다.



파우스트 1 - 10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민음사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Verweile doch, du bist so schon!


잡고 싶을 만큼, 머무르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풍족하고 행복한 순간. 순간 속의 영원.

아마도 이 구절은 꽤 많이 알려진 걸로 알고 있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만족하는 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말을 외치는 순간 그의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한다.

동네 도서관에서 '거작들을 만나다'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강사가 힘써 얘기한 구절이었다. 여러분은 살면서 이런 말을 한 순간이 있었냐고, 없다면 앞으로 살면서 꼭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무언가 삶의 순간이 반짝 빛나는 찰라를 말하는 건가 생각했다.

<여덟 단어>를 읽다가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발견했다(내가 아는 게 나와서 반가웠다). 여덟 단어 중 '현재'를 다루는 5강에 나온다. '현재'라는 것에서부터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딸은 이 구절을 아이팟에 새기면서 매 순간을 이렇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매 순간이 머물러라 아름답구나, 라는 것은 밥이 진짜 맛있구나, 해가 뜨는 게 기적 같구나, 라면서 사는 개와 같은 삶의 태도이죠."

- <여덟 단어> p.147

그냥 그 순간 순간을 온전히 내 삶의 시간으로 채우면서 사는게 어려운거 같으면서도 어쩌면 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오래 전에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오렌지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특별한 방법 없어요. 그저 오렌지를 먹을 땐 오렌지만 생각하면서 먹으면 돼요. 오렌지의 향긋한 향, 두꺼운 껍질을 깔 때의 촉감, 새콤 달콤한 맛, 알맹이가 터지는 식감을 충분히 즐기면서 먹을 때 가장 맛있어요." 여기에서 저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은 열망하는 한 방황한다."

Es irrt Mecsch, solange er strebt.

강유원의 책과 세계라는 방송에서 들은 구절이다.


"열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궁리한다.......요즘 치아가 좋지 않아서 치과에 자주 다니고 있는데 본인을 치료하는 의사선생님은 치과를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내 병원에 오는 사람들의 치아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성취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선생님의 꿈을 이루고자 아픔을 참고 있다. 이처럼 뭔가를 열망하는 사람은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궁리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궁리를 하는 것이 단박에 잘 될리 없다. 당연하게도 고통스럽게 자신을 괴롭히면서 이리저리 방황을 할 것이다. 뭔가를 추구하지 않은 사람은 차라리 고요하다. 방황하지 않는다. 열망을 가지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방황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는 '파우스트적 인간'이라 부른다."


방송을 듣다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다음 문장이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차라리 고요하다. 방황하지 않는다."

턱하고 가슴에 와 박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참 무서운 말이다. 뭐든 해야 한다. 살아 있다면,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으면.


강유원의 책과 세계 - 파우스트